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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며, 내다보며.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단지 컴퓨터 공학과를 나왔다는 이유로, 그 전에 단지 게임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진로를 택했다. 가장 간단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굳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때는 오로지 내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고, 당연히 생각했다.

 

그렇게 전공을 선택하고, 나의 쉽지 않은 대학생활을 지내왔다.

즐거운 동아리 생활과, 힘겨운 과 생활.

 사랑을 했고, 잃었던 시간을 거쳐 철없던 날을 보내고 있더 나는 학부 동기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며 취업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그곳에 유일하게 컴퓨터 관련 직종이었던 나. 문과, 토목과, 생명공학과. 여러 공통점이라고는 학교 말고는 없는 사람들이 같은 조가 되었다.

같은 조가 된 우리는, 주기적으로 모여 신문기사 같은 취업자료를 공유하고, 모의 면접을 봤다.

그들은 꽤나 필사적이었다. 뒤늦게(졸업후에야 이 그룹에 들어갔기에)합류한 나로써는 적응하기 힘든 분위기였다. 나 스스로는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그 당시에 토익 720점을 얻고, 토익스피킹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이 분위기에 쉽게 익숙해지지 못했다. 다만, 다들 힘을내는, 적극적인 분위기만은 나를 즐겁게(안심케) 했다.

 

 나는 우리들이 모이는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

지금 기억에 남는건, 서로서로 면접관, 면접자가 되는 모의 면접이었다. 우리는 주어진 자료를 토대로 면접을 준비했다. 그 당시에는 너무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마음에 없는 상황을,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내가 대변해야 했다.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것에 대해 나는 최선을 다해 이유을 만들어야 했다.(지금 생각하면 꽤나 괜찮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우리는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학교에서 주최하는 취업이라는 주제하에 친목회도 진행했다. (그때 스타킹을 처음 신어봤다.)

 

구직 시절에 나는 꽤 늦게 자각했던 것 같다. 

나와 3년을 같이 그룹을 만들어 다녔던 형은 4학년이 됐을 때 나와 함께 졸업작품 그룹을 같이 하자고 했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웠으나, 나는 그 말이 너무나 좋았다. 그 후 형은 4학년 1학기 말에 취업 준비를 한다고 했고(우리는 그 사이에 여행도 가고, 매일 밥친구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형을 자연스럽게 인정했다. (존경이나 위기감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남겨진 채 나의 길을 걸어갔다. (라고 해도, 그당시 나는 취업에 대한 위기감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좋아하던 게임(드래곤 네스트). 토익공부를 참 열심히 했다.)을 실컷 했고, 열심히 실연에 슬퍼했다.

 

우리의 졸업작품. 다행히도, 지금에도 너무나도 고맙게도, 안드로이드 개발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때도 나는 미래에 대한 자각이 없었다. 그 형이 안드로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나는 수락했다. 지금에야 말하지만 한명이 더 있었다.

 원래 나의 그룹(우리의 그룹)은 세명이었다. 졸업작품을 같이 하기로 한 형 외에 캐나다 유학을 간 멋진 형. 그 형이 4학년이 될 때 쯤, 떠나버렸다. 어떻게보면 자연스러웠다. 졸업 전 휴학, 잠시 쉬어가는, 또는 더 멀리 내다보기 위한 시간. 나는 당연히 그형이 그 시간을 헛돼이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걸 알고 있었다. 그 형은 그런 형이었다. 우리 모임의 기둥이었다. 언제나 결과를 내 놓는.

 

다시 돌아가서 우리의 졸업작품은 나의 졸업작품이 되어 있었다. 그룹을 제안해준 형은 취업을 위해 시간을 쓴다고 했다. 그때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형의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수긍했다.(지금도 그 결정은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머지 한명. 그사람이 문제였다. 4학년이 되고 나서 만난 인물. 형이라고 하지만 형 같지 않은 행동.

 

나의 대학교 생활은 참 단순했다. 나와 형들 누나들, 동생들. 그 외에는 구분하지 않았다. 형은 형이고, (누나도 마찬가지) 동생은 동생이었다. 형은 언제나 길을 제시해주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또는 나의 앞길을 같이 고민해줄 사람이었다. 

 틀렸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인간을 고민했다.

 형, 누나는 언제나 배고픈 나에게 밥을 사주고, 술 마시고 싶어 한 나에게 시간을 내어주던 사람만 있는게 아니었다. 나의 두번째 졸업과제 팀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당시 나는 토.대.단 이라는 앱을 만들었다. 안드로이드 2.2.2 버전과 함께. (영단어를 기반으로 한 퀴즈 앱이었다. 지금도 하드디스크에 있다.)

 

 아이디어는 처음 나에게 그룹을 제안한 형이 내었다. 아이디어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졸업 과제를 진행해야 했고, 안드로이드라는 OS가 있었고, 나는 졸업과제를 진행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뭐가 달랐나 싶다.

 다행히 안드로이드는 java로 구현되어 있었고, 앱 개발에 내 하루의 적당한 시간을 투자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다 시피 우리 팀원은 세명이었다. 취업준비를 하고, 과제를 발제했던 사람. 나. 그리고 또 한명.

 어느 여름. 나름 적당한 야근?을 하고 있던 나는, 자연스럽게(회사였으면 전사게시판에 올라온 시나리오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왜 혼자 이 과제(졸업작품)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그 형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지금 그 메세지가 남아있지 않지만, 그 답 만은 철저하게 기억한다.

"아, 잘 모르겠다."

이 말이 나는 아직도 화가 난다. 그때 어떤 문장을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힘들다, 도와달라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말에 돌아온다는 말이 고작 "잘 모르겠다." 였다. 충격이었다. 동시에 수 많은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 형은 지금은 잘 사는 것 같다.)

그 후에, 우리의 졸업발표는 잘 마무리 됐고... 나는 졸업했다. 우리는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