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며, 내다보며. (4) 졸업 후 고시원에 들어간 나. 나는 본격적으로 구직활동을 했다. 잘 나가는 사촌(이름있는 직장에 다니는) 과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꽤나 자신이 있었다. 스스로 당면한 상황에 대해, 잘 극복해나갈 믿음이 있었기에. 수십개의 이력서를 써 보내진 않았지만, 이력서를 썼고, 1차면접까지 도달 할 수 있었다. 이 당시에 나는 꽤나 작문에 자신이 있었고, 서류면접에는 거뜬히 통과할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몇번의 서울 면접을 봤지만, 탈락했다. 그중에는 지금에서는 규모를 짐작할 수 없는, 하지만 이름만큼은 찬란한 회사가 있었고,(American M*) 면접에 탈락했다. (지금생각하면, 가진것에 비하면 너무 작은 회사였다.. integer가 가진 byte가 다르다는 사실에 설전했던 기억이.. 더보기 돌이켜보며, 내다보며. (3) 졸업 후, 열심히 했던 것은 게임이었다. 당연했다. 내 인생 오락의 전부는 게임이었다.(한때 구기종목에 관심을 가지기는 했지만,) 졸업 후에도 자연스럽게 이모집에서 살고 있었다. 자엽스럽기에 스스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정말 어느날이다. 사건이 터졌다.(나에게) 감정을 밖으로 내비치지 않는 나는, 결국 밖으로 내비치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고시원에 들어가고 싶다." 어머니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고, 나는 고시원에 들어갔다. 졸업 후 4개월이 지난, 5월 즈음이었다. * 우리 이모는 참 좋은 사람입니다. 지금도 어머니 다음으로 좋은 사람입니다. 더보기 돌이켜보며, 내다보며. (2) 다시 돌아기서, 나는 고시원에 와 있었다. 타향에 살면서 통학하던 다는, 이모의 은덕으로(이모는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다. 어머니 다음으로 좋은 사람이다.) 이모의 집에서 살았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이 사실이 나에게, 부모님에게 얼마나 좋은 것이었는지는 졸업할 때 쯤에야 알게되었다. 졸업 한 후, 나는 갈 곳이 없었다. 오로지 해야 할 것만 남아있었다. "취업" 내 인생 목표에 두드러지지 않았던것이 갑자기 내게 다가왔다. 항상 생활을 해왔던 스스로에게, 졸업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이제는 내가 앞길을 정해야 했다.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토익 스피킹 학원을 등록했다. 그 당시 영어가 취업의 기본 소양으로 받아들여졌기에, 급하게 등록했다. 다행히도 높은 점수는 아니었지만 토익 점수도 었었다. 고작 720점이었다... 더보기 이전 1 2 3 4 ··· 28 다음